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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나리공원 꽃놀이 (10월 2일 방문 기록)

카톡 프로필 사진만 봐도 예상되는 연령대가 있다. 꽃 사진이 많으면 대부분 어머니라던데... 우리 엄마도 꽃을 좋아한다. 아주 오랜 시간 식당을 하셨는데, 언제나 말버릇처럼 "70세까지만 하고 싶어" 라고 하셨는데, 거짓말 처럼 70세 되던 해 폐암 판정을 받고 식당을 그만두게 되었다. 예전에는 가게를 쉬지 못해서 그 흔한 꽃구경 한번 못 모시고 갔는데... 이제는 표적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발이 짓무르고 피가나며 빨리 체력이 떨어지는 통에 거리가 먼 곳은 가지 못한다. 봄에 꽃 구경하자고 모시고 간 화담숲은, 집에서 멀고 오르막이 심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엄마가 좋아하는 코스모스의 계절이 왔기에 가깝고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을 뒤지게 됐다. 그리고 발견한 곳, '양주 나리 공원' 우리 부모님은 경기도 ..

그날의 기억2

오전 9시,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 brbrbr.... 오늘 오후 2시에 면접 가능하세요?" 창밖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새벽 4시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 걸려온 면접 제의 연락이었다. 싫다 좋다 할 감정적 여유도 없었기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네'라고 대답했다. 바라만 보기에도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누구나 아는 핫플레이스...의 반대편에 있었다. 그쪽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고즈넉한 동네의 작은 꼬마빌딩이었다. '아... 괜히 왔나' 회사 간판조차 없는 곳이었다. 지금껏 여러 회사를 다녀봤고 작은 회사도 물론 있었지만 다녀 본 중에 그야말로 가장 작은 곳 그래도 이 빗속을 뚫고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들어갔다. 폭우로 인한 습한 대리석 냄새가 코 끝..

[내돈내산]39세, 생애 첫 인모드 후기2 (통증, 멍)

9월 9일, 생애 처음으로 인모드라는 걸 해본 후 개인적으로 기록도 하고 또 많은 직장인들이 시술을 결심하기 전, 효과보다 더 걱정하는 멍은 어느 정도 들고 또 언제까지 가는지 궁금할 듯하여 후기를 남기고 있다. 오늘은 시술 이틀째부터 6일째의 변화된 사진을 올린다. 보통 효과는 3~4주차에 나온다고 하고 2차 시술은 4주 차 정도에 한번 더 받아야 한다고 하니 턱 살을 제거하기 위해 받았던 인모드 본래의 효과는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얼굴에 지방이 많은 경우 인모드 효과가 좋고, 지방보다 근육의 힘이 느슨해진 경우 슈링크가 더 낫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 슈링크는 얼굴선이 정리되어 시술 1회차에도 만족했던 시술이기에 인모드 2차 시술에는 같이 복합으로 받아보려고 한다. ▽ ▽ ▽ ▽ ▽ -----..

해본 것들 2021.09.14

[내돈내산]39세, 생애 첫 인모드 후기1 (통증, 멍)

노화는 서서히 진행되지 않고 계단식으로 훅 훅 간다고 한다. 어느덧 30대의 끝자락, 그동안 방치하다시피 내버려 둔 나를 위해 그 노화의 단계를 조금 늦춰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확실한 동안의 비결은 '다이어트'라고 하던데, 운동을 하든 식이요법을 하든 이미 중력의 힘을 받을 대로 받은 얼굴과 턱살은 답이 없었다. 내 피부 타입을 말하자면, 모태 꿀피부는 아니더라도 피부 때문에 걱정하던 적은 없었는데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33세 갑작스럽게 얼굴이 자주 빨갛고 열이 나면서 지루성피부염과 여드름, 편평 사마귀가 번갈아가며 나는 민감하고 예민한 피부를 갖게 됐다. 턱을 시작으로 무섭게 번지던 염증을 잠재우기 위해 피부과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간간히 압출과 필링을 받으러 간 것..

해본 것들 2021.09.09

PO(프로덕트 오너) K-애자일, K-PO에 대한 단상

회사에서 앱을 만들거나 IT 조직이 있다고 하는 대부분의 회사는 요즘 거의 애자일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하여 운영 중에 있다. 본 글에서는 IT기업과 비 IT기업에 재직하며 막 애자일이 도입되던 과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직무를 지칭하는 다양한 포지션에 몸담으며 느꼈던 점을 작성하였으며, 애자일이나 PO에 대한 이론이나 멋들어진 정의들은 다른 포스트에도 많으니 별도로 언급하진 않겠다. K-POP, K-뷰티, K-방역 요즘 들어 어떤 카테고리, 어떤 프로세스 건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특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이 만들어졌을 때 곧잘 K를 붙이곤 한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애자일이란 방법론이 각광받으며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웹 기획, 서비스 기획자가 마침내 프로덕트의 생애에 있어 PO, PM이..

탐,삼,솜을 아시나요?

탐,삼,솜 (혹은 탐 샘 솜)을 아시나요? 기획자로 몸담으며 다양한 문서를 작성해봤지만 난감할 때가 있다. 흔히 윗 분들이 툭! 하고 던지는 아이디어로 그럴듯한 기획서를 만들어내야 할 때이다. (마치, 내 아이디어인 듯이) 물론,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른말을 해야 하지만, 사회생활이 어디 그리 쉽다더냐 이미 윗분들 황금라인으로 미리 진행하는 거로 얘기는 다 되어 있으니 형식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기획서이거나 비록 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만드는 것은 어차피 나이기에 이왕이면 되는 방향으로 작성해야 할 때도 있다. 직장인의 고충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고 그럼 이런 신규 사업이나 신규 제품 개발에 있어 이제 당위성을 찾아야 하는 첫 과정이자 어느 정도의 시장에서 얼마큼 벌..

그날의 기억1

IT회사에서 비 IT회사로 이직했던, 그날의 기억 새벽 4시 이력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2011년부터 2년간, 밤낮으로 새로운 앱이 막 쏟아지던 그 소용돌이에 있다 보니 너무 지쳐버렸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4개월이 넘어갈 무렵부터 몸은 정상이 아님을 느꼈다. 잦은 신경성 복통으로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받은 심리 상담과 반알 짜리 약 하나에 이상한 용기가 샘솟았고 병원을 나와 복귀한 그길로 뜬금없는 퇴사 선언을 질러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된 시간... 은행이 아니었다면 몇 달이고 그저 쉬고 싶었지만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정도는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PC방으로 향했다. 돈은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 편하게 일했으면 싶었다. 그리고 내심 IT가 아니었으면..

함께한 동료를 보내며

그래 동료니까 봐주께 그래 너니까 내가 더 해줄게 라며 일로 만나 내 가족보다 더 오랜시간 함께 하며 술잔 마주치던 이들이 남는 이와 가는 이로 나뉘는 중에도 나는 가는 이인가 아닌가에만 온갖 정신 팔려 있다가 남는 이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보인 너를 그렇게 침묵으로 보내는 것이... 무심히 함께하던 커피 한잔이, 무료했던 오후, 터벅터벅 하드 하나씩 먹으며 걷던 동네길이, 다음엔 저기 가보자 하며 항상 그랬듯 익숙한 곳에 가느라 지나쳐간 수많은 술집들이 이제 다시는 같은 이유로 술 한잔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 그 대가겠지 나이 듦이란 그것이 어떤 외로움 일지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서비스 기획이 아니네요.

하셨던 일이 서비스 기획은 아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도 용납하지 않는 듯이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덧 13년 차... 분명 그 순간, 머릿속으로는 그동안 봐왔던 허세 가득한 표현부터 나름의 정의들까지 스쳐 지나갔지만, 그 무엇 하나도 자신 있게 입 밖으로 꺼낼 수없었다. 서비스 기획자로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내가 해왔던 일이 서비스 기획이 아니라는 부정적 의견에 이어진 질문이었기에 그 분위기를 상쇄시킬만한 한 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서비스 기획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싫었고 불안해서 7년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뛰쳐나온 건데... 아주 예리한 무언가에 찔린 것 같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그중 몇몇은 성..

7년 만의 이직

7년 만의 이직은, 실패였다. 힘들었던 건 단지 새로운 회사에 대한 낯섦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변해있었다. 더 이상 내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역시도 변해가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안정되다 못해 지루해져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곳을 박차고 나오니 그동안의 여유를 누렸던 만큼 적응은 쉽지 않았다. IT회사가 아닌 곳에서 IT기획자로 나름 치열하게 숱한 새벽별을 보며 일했지만 실체 없는 문서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내 성장도 멈춰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간 그럴듯한 기획으로 수백억에 달하는 투자도 받았지만, 정작 실행하지 못했기에 실패할 기회 조차 없었다. 내가 한 기획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