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이직은, 실패였다.
힘들었던 건 단지 새로운 회사에 대한 낯섦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변해있었다.
더 이상 내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역시도 변해가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안정되다 못해 지루해져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곳을 박차고 나오니 그동안의 여유를 누렸던 만큼 적응은 쉽지 않았다.
IT회사가 아닌 곳에서 IT기획자로 나름 치열하게 숱한 새벽별을 보며 일했지만 실체 없는 문서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내 성장도 멈춰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간 그럴듯한 기획으로 수백억에 달하는 투자도 받았지만, 정작 실행하지 못했기에 실패할 기회 조차 없었다.
내가 한 기획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 검증받지 못했으니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매 순간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달려왔으나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없었고 그렇게 보내온 나의 시간과 밖의 세상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숨이 막힐 듯 겁이 났다.
내 연차는 어느 덧 10여 년이 넘어 있었고, 그에 걸맞은 커리어와 경험을 증명해 내야 했다.
IT가 아닌 곳에서의 IT기획은 오프라인을 제외한 모든 것에 관여했고 하드웨어까지 넘어가는 고민의 범위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한계를 규정하기는 싫지만, 문과도 아닌 예체능 전공인 나에게 그 고민의 시간은 철저하게 외로웠고 두려웠다.
그런 시간들을 홀로 보내며 주어진 미션들을 하나둘씩 해냈고 회사에서의 위치는 올라갔지만
정작 비즈니스나 IT영역에서 내 전문 분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 몸 담은 그 회사의 프로세스에 적합한 사람일 뿐...
커리어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자존감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처절할 정도로 무기력한 날들이 나를 더 구석으로 처박아 두게 했으며 스스로 도태되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갖혀버린 세계에서 나오지 못하고 도망쳐버렸다.
7년 만의 내 첫 이직은 이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이직을 실행에 옮기기 전, 다시 7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가진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그동안의 해온 것들을 다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처음부터...
연차와 능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세상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었고 시간이 가면 알아서 잘하게 되는 것도 없었으며
그 순간을 피해버리면, 언젠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짬바'는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원치 않았으나 내 의지로 만든 휴식의 시간...
지금 나는 잃어버린 '짬'을 다시 찾아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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