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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기록들 57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피맥 한잔 (9월28일 방문기록)

일요일 오후 4시, 구름이 적당히 낀 청명한 가을 하늘, 집에만 있기 아쉬워 서방이를 따라 마곡 사이언스파크를 갔다. 이미 잘 알겠지만 마곡은 엘지, 코오롱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 사옥이 이전하면서 어마어마한 강서 상권을 만들었고 주말 외식이나 산책하기 좋은 곳들이 그득그득하다. 이번에 간 곳은 엘지 사옥이 있는 사이언스파크를 마주보고 있는 작은 카페? 거리였다. 합정보다는 소소하지만 가게마다 알전구를 달고, 캠핑 의자를 두어 멍 때리기 좋은 카페와 분위기 내기 좋은 이태리 식당, 맥주 한잔하기 좋은 가게들이 늘어서있었다. 역시나 좋은 명당 카페의 야외 좌석은 모두 만석이라 저녁 식사도 해야 할 시간이라 가장 앞쪽의 피맥이란 가게 야외 좌석에 앉았다. 피자가 그렇게 당기진 않았지만, 그 캠핑 ..

양주 나리공원 꽃놀이 (10월 2일 방문 기록)

카톡 프로필 사진만 봐도 예상되는 연령대가 있다. 꽃 사진이 많으면 대부분 어머니라던데... 우리 엄마도 꽃을 좋아한다. 아주 오랜 시간 식당을 하셨는데, 언제나 말버릇처럼 "70세까지만 하고 싶어" 라고 하셨는데, 거짓말 처럼 70세 되던 해 폐암 판정을 받고 식당을 그만두게 되었다. 예전에는 가게를 쉬지 못해서 그 흔한 꽃구경 한번 못 모시고 갔는데... 이제는 표적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발이 짓무르고 피가나며 빨리 체력이 떨어지는 통에 거리가 먼 곳은 가지 못한다. 봄에 꽃 구경하자고 모시고 간 화담숲은, 집에서 멀고 오르막이 심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엄마가 좋아하는 코스모스의 계절이 왔기에 가깝고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을 뒤지게 됐다. 그리고 발견한 곳, '양주 나리 공원' 우리 부모님은 경기도 ..

그날의 기억2

오전 9시,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 brbrbr.... 오늘 오후 2시에 면접 가능하세요?" 창밖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새벽 4시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 걸려온 면접 제의 연락이었다. 싫다 좋다 할 감정적 여유도 없었기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네'라고 대답했다. 바라만 보기에도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누구나 아는 핫플레이스...의 반대편에 있었다. 그쪽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고즈넉한 동네의 작은 꼬마빌딩이었다. '아... 괜히 왔나' 회사 간판조차 없는 곳이었다. 지금껏 여러 회사를 다녀봤고 작은 회사도 물론 있었지만 다녀 본 중에 그야말로 가장 작은 곳 그래도 이 빗속을 뚫고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들어갔다. 폭우로 인한 습한 대리석 냄새가 코 끝..

그날의 기억1

IT회사에서 비 IT회사로 이직했던, 그날의 기억 새벽 4시 이력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2011년부터 2년간, 밤낮으로 새로운 앱이 막 쏟아지던 그 소용돌이에 있다 보니 너무 지쳐버렸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4개월이 넘어갈 무렵부터 몸은 정상이 아님을 느꼈다. 잦은 신경성 복통으로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받은 심리 상담과 반알 짜리 약 하나에 이상한 용기가 샘솟았고 병원을 나와 복귀한 그길로 뜬금없는 퇴사 선언을 질러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된 시간... 은행이 아니었다면 몇 달이고 그저 쉬고 싶었지만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정도는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PC방으로 향했다. 돈은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 편하게 일했으면 싶었다. 그리고 내심 IT가 아니었으면..

함께한 동료를 보내며

그래 동료니까 봐주께 그래 너니까 내가 더 해줄게 라며 일로 만나 내 가족보다 더 오랜시간 함께 하며 술잔 마주치던 이들이 남는 이와 가는 이로 나뉘는 중에도 나는 가는 이인가 아닌가에만 온갖 정신 팔려 있다가 남는 이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보인 너를 그렇게 침묵으로 보내는 것이... 무심히 함께하던 커피 한잔이, 무료했던 오후, 터벅터벅 하드 하나씩 먹으며 걷던 동네길이, 다음엔 저기 가보자 하며 항상 그랬듯 익숙한 곳에 가느라 지나쳐간 수많은 술집들이 이제 다시는 같은 이유로 술 한잔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 그 대가겠지 나이 듦이란 그것이 어떤 외로움 일지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서비스 기획이 아니네요.

하셨던 일이 서비스 기획은 아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도 용납하지 않는 듯이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덧 13년 차... 분명 그 순간, 머릿속으로는 그동안 봐왔던 허세 가득한 표현부터 나름의 정의들까지 스쳐 지나갔지만, 그 무엇 하나도 자신 있게 입 밖으로 꺼낼 수없었다. 서비스 기획자로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내가 해왔던 일이 서비스 기획이 아니라는 부정적 의견에 이어진 질문이었기에 그 분위기를 상쇄시킬만한 한 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서비스 기획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싫었고 불안해서 7년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뛰쳐나온 건데... 아주 예리한 무언가에 찔린 것 같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그중 몇몇은 성..

7년 만의 이직

7년 만의 이직은, 실패였다. 힘들었던 건 단지 새로운 회사에 대한 낯섦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변해있었다. 더 이상 내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역시도 변해가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안정되다 못해 지루해져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곳을 박차고 나오니 그동안의 여유를 누렸던 만큼 적응은 쉽지 않았다. IT회사가 아닌 곳에서 IT기획자로 나름 치열하게 숱한 새벽별을 보며 일했지만 실체 없는 문서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내 성장도 멈춰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간 그럴듯한 기획으로 수백억에 달하는 투자도 받았지만, 정작 실행하지 못했기에 실패할 기회 조차 없었다. 내가 한 기획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