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셨던 일이 서비스 기획은 아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도 용납하지 않는 듯이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덧 13년 차...
분명 그 순간, 머릿속으로는 그동안 봐왔던 허세 가득한 표현부터 나름의 정의들까지 스쳐 지나갔지만, 그 무엇 하나도 자신 있게 입 밖으로 꺼낼 수없었다.
서비스 기획자로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내가 해왔던 일이 서비스 기획이 아니라는 부정적 의견에 이어진 질문이었기에 그 분위기를 상쇄시킬만한 한 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서비스 기획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싫었고 불안해서 7년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뛰쳐나온 건데... 아주 예리한 무언가에 찔린 것 같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그중 몇몇은 성숙기를 지나면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겨난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이 되기도 하는 긴 시간 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기획을 하고.. 또 하고..
그렇게 고객보다는 신규 모델 개발 프로젝트의 시장분석과 전략, 신규 구축에 더 치중된 문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실패인지 성공인지도 모를 그 많은 문서들과 함께 내 커리어에도 먼지가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있으면 먼지 쌓인 기획서와 함께 곧 파쇄될 것 같은 생각에 늦은 결심을 하고 밖으로 나왔고 막연히 불안하다 상상만 했던 현실을 지금 면접 자리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중이다.
7년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기를 쓰며 해내 왔던 내 모든 시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며 멋대로 서비스 기획이 아니라는 그 오만한 물음에 제대로 대답조차 못한, 그저 갈 곳이 없어 꼬일 대로 꼬인 커리어를 어쩌지 못하고 앉아있는 면접자 딱 그 수준이었다.
"서비스 기획이 아니네요"
"기획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두 질문이, 나를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려 자기혐오와 번아웃까지 오게 되었다.
해놓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둔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직장 선배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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